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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회사의 급격한 성장 속에는 사기와 기만적 행위가 뒤따랐다. 1919년, 천주군 내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락샤스 투자사기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김국자는 ‘6974m짜리 마천루’ 건설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단지 6974mm에 불과한 순두부 가게를 세웠고, 막대한 투자 손실을 초래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김국자는 천주를 떠나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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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 그 무렵 일본 제국은 항공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국자의 항공기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김국자를 보호하며 그를 독일로 유학 보냈고, 그곳에서 김국자는 ‘백성선항공’을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항공기 설계는 구조적 결함과 비정상적인 디자인으로 비난을 받았고, 나치 독일은 이 회사를 폐쇄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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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그 무렵 일본 제국은 항공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국자의 항공기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김국자를 보호하며 그를 기?회의 땅 만주에서 굴려지는 관동군으로 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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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독일로 유학 보냈고, 그곳에서 김국자는 ‘백성선항공’을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항공기 설계는 구조적 결함과 비정상적인 디자인으로 비난을 받았고, 나치 독일은 이 회사를 폐쇄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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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5 | 다만, 당시 아돌프 히틀러는 김국자의 숙청을 막았으며, 이에 대한 이유는 오늘날까지도 역사적 논란으로 남아 있다. 한편 김국자가 독일에서 남긴 화학 물질 중 하나인 ‘치클론 B’는 이후 나치의 대학살에 악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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